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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CATION/책_추천

<최초의 7일> 존 C. 레녹스(새물결)

by Gimpo 2019. 4. 12.

 

기독교 신앙을 갖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늘 시험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창세기'에서 나타난 창조 기사에 관한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라는 고백은 변함없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어떻게 봐야 하나, 심지어 과학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생들도 질문하기도 한다. 신앙을 먼저 가진 어른으로써, 때론 아이들이 난감한 질문을 한다. "성경에 공룡이 있었나요?", "왜 학교에서 배운 거라 성경에서 배운 게 달라요?" 등등. 수없이 쏟아져 온 과학과 신앙의 이슈는 계속 되고 있다. 최근 뉴스 기사에서 빛의 속도로 5500만년에 있는 곳에 블랙홀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7일>은 우리에게 과학과 신앙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이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창세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심지어 과학자들 조차도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소개한다.  이 책을 쓴 지은이는 수학자이지만, 과학에 조예가 깊다. 그 뿐만 아니라, 성경 창세기를 꼼꼼하게 살펴 오늘날 이 시대의 논쟁에 대해 차근차근 답해 나가고 있다. 무엇이 답이다! 라고 섣불리 해답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균형 잡힌 시각과 함께 어느새 저자의 논리를 따라 가다보면 스스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책 내용 중에 3장만 정리한 부분만 맛보기로 소개한다.

3. 지구는 오래되었는가? 창조의 날들

창세기의 날들에 대한 해석 : 역사적 관점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의 날들에 대한 견해에서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그룹1. 창세기의 ‘날’은 24시간, 창조는 1주일, 지구는 젊다(6천년 전에 창조)

그룹2. 지구가 오래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 두 그룹도 최근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나 창조론자라는 말은 차츰 의미가 변해 대개 ‘젊은 지구 창조론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창세기 초반의 장들에 대한 논의에서 발생하는 주요한 긴장들 중 하나는 창세기 저자가 이 책이 역사를 읽히기를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저자의 의도가 비유적·신학적 언어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창세기의 날들에 관한 주요 견해들

24시간 견해

이 날들은 하루가 24시간으로 이루어진 7일이며, 대략 6천 년 전 지구 상의 한 주간이다.

유대인(유대력 5770년)

루터 및 칼뱅

날-시대 견해

이 날들은 연대기적 순서를 보여주며,

각가의 날들은 특정되지 않은 기간을 나타낸다.

필론 – 순서 및 배열의 원칙

순교자 유스티누스

이레나이우스

프레임워크 견해

이 날들은 연대기적 순서라기 보다 논리적 순서를 보여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24시간 견해와 날-시대 견해는 명확하다. 단, 프레임워크 견해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레임워크 견해는 시간 순서보다는 논리적 순서에 우선 순위를 둔다.

프레임워크 견해에 대한 한 예는 병원 건물을 묘사하라고 한다면, 자기 회사에서 병원을 지은 건축업자와 근무하는 내과의사는 다르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주어진 순서와 이사야 45:12에 주어진 순서를 비교할 수 있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했다.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내가 하늘의 군대에게 명령했다.” 이사야의 묘사 순서는 시간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

창세기의 날들이 문학적·예술적 프레임워크를 형성한다는 이러한 견해는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너(1744-1803)에 의해 제안되었다.

형성

채움

1

발광체

4

2

하늘/바다

바다 생물/날개 달린 생물

5

3

바다/마른 땅/식물

육지 동물/인간

6

 

첫 번째 묶음은 형체가 없었던 것들에게 형체나 구조를 부여하는 관련이 있으며, 두 번째 묶음은 새로 만들어진 비어 있는 형체들을 채우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병렬 관계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종종 지적되었다.

이 날들이 명백하게 숫자상의 순서를 따라 불리고 있다는 점과 이 내러티브에 사용된 동사의 형태들이 “기본적으로 시간의 추이를 포함하는 별개의 사건들을 묘사히기 위한‘ 것이라는 문법적 고찰은 여기에 연대기적 순서가 의도되었다는 입장을 강력히 지지한다. 프레임워크의 존재는 이 텍스트에 질서 정연한 순서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음을 시사한다. 순서와 프레임워크가 반드시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해석들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주목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은 이것들이 동일한 텍스트에 대한 다른 해석들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해석이 가장 합리적인지 결정하기 전에 먼저 그 텍스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견해와 텍스트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논의를 진행할 때, 이 구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성서의 영감 교리를 받아들인다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영감 된 것은 성서이지 성서에 대한 나의 특정한 이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텍스트를 진지하게 대해야만 한다. 텍스트를 진지하게 대하는 방법 중 하나는 창세기 1장을 읽되,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그것을 읽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읽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창조에 관한 진술 – 1:1~2

하나님이 6일 동안 우주를 창조하시고 조직하심,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는 데서 절정을 이룸 – 1:3~21

일곱째 날, 하나님이 쉬신 날 – 안식일 – 2:2~3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첫인상은 사건들의 연대기적 순서에 관한 것인데, 이는 최대한 간략하게 시간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내러티브는 “형태가 없고 비어 있는”(1:2) 세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셨으며, 어ᄄᅠᇂ게 창조 명령을 통해 매일매일 단계적으로 세상을 형성하시고 채우셔서 마침내 세상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지닌 독특한 피조물인 인간이 거주하기에 알맞게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시대를 막록하고 창세기 1장을 읽는 독자들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노동 주간” 개념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창조 내러티브를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이를 거룩히 지키라...일골째 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다.”(출20:8~11).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을 그의 사역 주간 동안 낮에는 일하고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휴식을 취하는 ‘창조적 장인’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인간의 일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창조하다’(바라)

인간의 휴식은 하나님의 휴식과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피곤해하지 않는다(시 121:4).

하나님의 창조 주간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 반면 우리들의 노동 주간은 반복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창조 주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남아 있다.

창세기 1:1-2:4에서 “날”이라는 단어의 의미

히브리어 “욤”(yom)으로 표현된 “날”은 창세기 1:5에 최초로 언급된다. 일차적 의미는

“낮”이다. “하나님이 빛을 날(Day)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Night)이라 부르셨다. 예수가 “낮(day)에 12시간이 있지 않느냐?”(요11:9)

2. 창세기 1:5에서 “날”이라는 단어가 두 번째로 등장할 때는 첫째 날이 “저녁과 아침”에 관

련된다. “날”은 24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의미한다.

3. “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다음 장소는 하나님이 창조사역을 쉬셨던 일곱째 날, 곧 안식일에 대해 설명하는 곳이다. 여기서 “저녁과 아침”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하나님이 얼마나 오랫동안 쉬셨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일곱째 날은 창조활동을 수행한 날들인 처음 6일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안식 안에 있다?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위반했다는 비판에서 “내 아버지가 지금까지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대답하신 말에 암시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주를 보전하는 사역, 그리고 구원과 구속의 사역은 쉬시지 않는다.

4.창세기 2:4 “하나님이 창조하셨을 때” “때” 라는 말은 히브리어 “그 날에”를 번역한 것이다. “날”은 24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를 의미하지 않으며,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기간을 가리킨다.

또 한 가지 문법적인 문제이다. 구약학자 데이비드 구딩이 지적한다. 처음의 5일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정관사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에 대해서는 정관사가 사용되었다.

창세기 1:1의 “창조하셨다”라는 동사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었으며, 첫째 날은 3절에서 시작한다. 태초를 첫째 날로부터 분리시키는 창세기 1:1의 텍스트는 우주의 나이를 결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 따라서 창세기의 날들을 24시간으로 이루어진 날들로 간주하는 것과, 우주가 아주 오래되었다고 믿는 것이 논리적으로 둘 다 가능하다.

관사의 존재는 마지막 2일이 특별함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여섯째 날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일곱째 날에는 하나님이 쉬셨고 그의 사역이 완성되었다. 그래서 세 가지의 견해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창조의 각 단계마다 하나님은 창조를 다음 단계의 형태와 복잡성으로 진보시키기 위해 우주에 새로운 차원의 정보와 에너지를 주입하셨다.

오리게네스가 오래전에 지적했던 문제를 살펴보았는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적에 동의한다. 날들이 연대기적 순서로 주어진 것이라면 태양이 어떻게 넷째 날에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태양이 만들어지지 않고 지구가 자전하지 않았는가를 물을 수 있다.

논리적 대안은 창세기 주간의 시작점에 이미 태양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구름 마개가 흩어지면서 이들이 식별 가능한 빛들로 하늘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콜린스는 언어학적 관점에서 세 번째 가능성을 제안했다. 창세기 1:16의 ‘만들었다’라는 동사는 반드시 ‘창조하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대상을 손보는 것(ESV), ‘지정했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우주에서 이들이 맡을 역할을 지정하시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펼친 주장의 주요 논지는, 성서의 권위와 최고의 지위를 차협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성서 자체가 우리에게 제안한 것처럼(롬 1:19-20) 우주에 대한 현대의 첨단 지식을 고려하면서도 창세기 1장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